- 자아성찰(自我省察)
- 어느날 탈무드를 공부하고 싶은 사람이 랍비를 찾아 왔습니다. 랍비는 그가 과연 그 어렵고 유익한 탈무드를 배울수 있는 자격이 있는지를 시험해 보겠다고 하였습니다. 그 사람은 꼭 탈무드를 배우고 싶기 때문에 시험을 처서라도 허락을 해 달라고 하였습니다. 이제 랍비가 질문을 하였습니다.
- “두 사내 아이가 여름 방학에 집에 꿀뚝 소재를 하였다. 한 아이는 얼굴이 새까맣게 되어 굴뚝에서 내려 왔다. 그리고 또 한아이는 전혀 얼굴에 검정이 묻지 않고 말쑥한 차림으로 내려 왔다 그렇다면 누가 얼굴을 씻을 것이라고 생각 하는가?” “그는 물론 얼굴이 더러운 사내 아이가 얼굴을 씻을 것입니다.” 랍비는 차갑게 “그러기에 그대는 아직 탈무드를 펼 자격이 없다 돌아 가거라. 그리고 답은 내가 가르쳐 주겠다. 두 사내 아이는 굴뚝을 소제하고 하나는 말쑥한 차림으로 하나는 더러운 얼굴을 하였는데 서로 얼굴을 보게 되었다 그러자 얼굴이 말쑥한 사내 아이는 내 얼굴도 저 아이처럼 얼굴이 새까맣게 되었으리라고 생각할 것이며 얼굴이 새까만 아이는 친구의 얼굴을 보면서 내 얼굴도 저렇게 검정이 묻지 않고 말쑥할 것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여기까지 말하자 그 탈무드를 배우겠다고 하던 사람은 랍비의 말을 자르면서“네 알았습니다. 얼굴이 말쑥한 아이가 얼굴을 씻을 것입니다.” 그랬더니 랍비의 하는말 “그만 두세 그대는 아직도 탈무드를 배울 자격이 없다네 돌아가게” 그는 낙담을 하면서 “아니 그러면 도대체 탈무드에서는 무어라고 말합니까?” 랍비는 대답을 합니다. “내가 답을 알으켜 주지, 두 사내 아이가 굴뚝을 소제하고 있었다면 같은 굴뚝을 소제 했을 테인데 한 사내 아이는 말쑥하고 한 사내아이는 얼굴이 더러워져 있다는 것은 있을수 없는 일이네”
- 이 이야기는 그냥 웃어 넘기려고 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이토록 사람이란 그 마음이 항상 더러워져 있고 그 누구 한 사람도 내 마음은 깨끗하다고 자부 할 사람이 없다는 것입니다.
- “우리에게는 총명함이 있다해도 보잘 것 없으며 약간의 총명 그것 마져도 무관심 때문에 곧 잃어 버리고 만다. 우리는 자신이 지니고 있는 내적 성찰력도 잘 깨닫지 못하기 일쑤다. 우리는 죄악을 행하기 일쑤이며 그러면서 자기 행위에 대해서 변명을 하다가 더 나쁜 죄악을 행한다. 우리는 남의 사소한 잘못을 힐책 하면서 자신의 큰 잘못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살아간다. 그대가 자신 자신과 더불어 있지 않을때에는 어디에 있단 말인가? 그리고 그대가 자신의 일을 제쳐놓고 동분서주 하면서 모든일에 참견할 때 과연 무슨 소득이있겠는가? 마음의 평화와 참다운 단일 목표를 바란다면 그대는 자기 자신을 주시해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그대가 온갖 일시적인 걱정 거리를 물리치고 항상 홀가분한 몸가짐을 유지 한다면 영적으로 큰 발전을 이룰 것이다."
- 고대 유명한 신앙인 토마스 아퀴나스(Thomas Aquinas 1224~5-1274)의 말입니다.
Tuesday, December 20, 2011
6-12-2011 스프링필드 중앙교회 주보 3면에서 퍼온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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