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의지와 죄성을 지닌 인간
서정길 목사(Th. D)
목회전략센타 운영자
사람들은, ‘우리들은 문화라는 것을 가지고 있다’ 고 하며 그 문화를 가지며 누릴수 있는 것에 대해 자랑한다. 그러나 문화라는 것이 인간의 자율성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자율성은 언제나 선보다 악으로, 밝음 보다 어두움으로 달려 가려는 본성을 가지고 있다.
심리학에서는 개인의 과거를 생각하게 한후 그의 잘못 되어진 현재를 되돌리려 하고 있다. 물론 과거에 다른 사람으로 부터 침해를 입은 사실을 기억 해 냄으로서 피해입은 자신에 대해 달래 줄 수 는 있다. 그러나 거기에 반드시 덧붙여야 할 것이 있는데 그것은, 성경(롬5:12)이 밝혀 주는 대로 자신은 철저히 죄인이라는 사실을 아는 것이다. 그래서 이 죄로 부터의 철저한 해방이 필요하다.
사람은 자유의지를 매우 주장한다. 이 자유의지가 매우 우수하다고 여기기도 하고 또 이것이 나의 행동의 나침판으로 사용하려한다. 그러나 진정 이 자유의지를 통해 결정된 것들이 아무 꺼리낌 없이 행동되어 질수 있는 것인가?
아우구스티누스(Augustine of Hippo AD 353-430) 는 인간이 가지는 자유의지에 대해 이러한 기본개념을 가지고 있다.
첫째 인간의 타고난 자유를 긍정한다. 인간은 어떤일을 할때 불가피해서 하는 것이 아니라 자유롭게 한다. 로봇의 두뇌를 조종하는 것이 아니라 자유의지를 지닌 인격과 선택할수 있는 존재로 만들었다.
그러나 인간의 자유의지는 죄로 말미암아 손상되고 무능력해졌다. (그러나 완전히 파괴되거나 사라진 것은 아니다)
그러한 자유의지를 치유하고 회복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은총이 필요하다. 자유의지는 진짜 존재한다. 그러나 죄로 인해 왜곡되고 약해지고 손상 되었다.
예를 들어 법관의 상징인 저울이 있다고 하자. 오른쪽은 선이고 왼쪽은 악이다. 만일 누군가가 한쪽에 무엇을 놓으면 그쪽으로 사정없이 기울어진다. 그렇다면 ‘자유의지’는 어느곳에 가까운가? 펠라기우스(Pelagius AD360-420) 는 자유의지는 저울의 한 가운데 있다고 말한다. 펠라기우스주의는 이 자유의지가 어느쪽으로 기우리든지 자신의 선택에 책임을 져야한다고 한다.
그러나 아우구스티누스는 자유의지는 악한쪽에 기우러져 있다고 보았다. 만약에 사람이 자유의지만을 가지고 어떤 선택을 한다면 그 균형이 악 쪽으로 심하게 편향 되어 버린다고 했다.
펠라기우스주의는 인간의 본성은 본래 자유롭고 좋게 창조 되었으며 어떤 알 수 없는 약점으로 손상되거나 무력해지지 않았다. 인간의 결함은 어떤 것이든 하나님의 선하심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수 밖에 없다. 그렇다고 하나님이 직접 간섭하여 인간의 결정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인간의 온전성을 깨뜨리는 일이 된다고 한다. 여기서 펠라기우스주의의 말이 옳다고 여기며 살아가기로 결정 한다면 사람 안에는 곧 불안의 요소가 작용한다. 그리고 절망에 이르르게 된다.
둘째 아우구스티누스는 모든 인간이 죄의 지배를 받게 되었다 고 보았다.
하나님께 쓰임 받아야 할 그리스도인의 자유의지가 왜 이렇게도 나약한 것인가? 인간의 정신은 죄 때문에 어두워 지고 약해졌다. 죄로 인해 인간은 명료하게 사고 할 수 없으며 특히 고상한 영적 진리와 개념들을 이해할 수 없게 되었다. 죄인인 인간은 심각한 질병에 걸린 것이라 볼수 있으며 자신의 병을 고치기는 커녕 올바로 진단조차 못하는 처지에 있다. 인간의 깊은 질병인 죄를 바르게 진단하고 적절한 치료법(회복) 을 제시할수 있는 길은 하나님의 은총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인간에게 자기의 죄를 다스릴 능력이 없다고 보았다. 죄는 태어날 때 부터 삶을 오염 시키고 그 후 평생 동안의 삶을 지배한다. 죄란 인간의 힘으로 전혀 통제 할 수 없는 상태를 가리킨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인간이 태어 나면서 부터 선천적으로 죄의 성향을 지닌다고 생각했다. 즉 본래부터 죄짓는 행동 쪽으로 기울어져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죄가 여러가지 죄들을 낳는다. 죄성이라는 근본적 상태가 구체적인 죄의 행동을 일으킨다.
사람이 사람다웁게 살아 가려는 의지는 가지고 있지만 지리한 지식의 채움이나 경험의 터득이나 외부로 부터 오는 요구에 의해 정립되어가는 것은 아니다. 많이 알고 많이 경험하고 많은 요구를 받아가면서 점점더 비 인간화가 발달될 뿐이다. 이것은 또한 인간이 가지는 절망의 한 부분이라 할수 있다. 8/19/21 목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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