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turday, March 21, 2015

사도신경 강해(1)


고백하는 신앙
10:9-13
5-14-00 저녁 서 정 길 목사
어떤 남편이 집에서 늘 아내에게 세상에 참 믿을 노-이 없다고 한탄을 하였습니다. 정치도 그렇고 기업가들도 그렇고 경찰은 물론 심지어 학교에서 가르치는 사람들까지도 믿을수 없다고 한탄을 하였습니다. 그래서 그 남편은 말것마다 세상에 믿을 노- 미음 이 하나도 없다고 하였습니다. 그 이야기를 다섯 살난 아들이 늘 듣고 있었습니다. 어느날 아버지가 그 아들을 데리고 공중 목욕탕에 갔습니다. 옷을 벗고 아들과 함께 욕탕으로 들어가는데 아이가 뚜거운곳이라 겁을 내고 들어가지 않자 아버지가 먼저 들어가서 욕탕에 몸을 담구면서 하는말아 시원하다그러니 아들이 아빠 정말 뜨겁지 않고 시원하단 말이예요” “그래 정말이다 시원하다아이가 아빠의말을 믿고 발을 집어 넣었다가 뜨거워 얼른 발을 빼고서 하는말 세상에 믿을 노-미음 하나도 없네라고 하였다고 합니다.
1.믿음에 관한 일상성(daily life)
우리는 일상생활 가운데 나는 믿습니다라는 말을 많이 사용하게 됩니다. 이러한 말은 주로 인간관계에서 어떤 상대자의 진실성을 신뢰하는 태도를 두고 하는 말입니다. 예컨데 친구가 나에게 약속한것에 대해서 그 약속이 틀림없이 이행될 것이라고 믿는 일과 애인이 고백한 그 사랑이 틀림없으리라는 확신에서 가지는 마음의 자세가 곧 믿음 입니다.
그런데 또 이런 일도 있습니다. 내가 직접 경험하거나 확인해 보지못한 일에 대해서도 믿음을 가질수 있습니다. 예컨데 지구는 둥글다는 주장이나 지구가 태양을 중심해서 돌고 있다는 주장을 들었거나 나이야 가라 폭포가 아름답고 웅장하다는 말을 들을때에 그것을 주장하는 사람을 신뢰할때 우리는 그의 말을 듣고 그러리라고 믿게됩니다.
2.종교적인 믿음
마찬가지로 우리는 종교적인 교훈의 말을 듣게 되는데 이 종교적인 교훈도 두가지로 구분이 됩니다. 먼저는 우리가 체험 될수 있는것이 있고 체험 될수 없는 것이 있습니다. 예컨데 석가가 말하기를 생노병사(生老病死,살고 늙고 병들고 죽는것)는 인간의 피할수 없는 사대고뇌(四大苦惱)라고 할때 우리는 이것을 체험 할수 있습니다. 그러나 또 하나의 교훈은 우리가 아직 체험하거나 증명 되지 않는 것들이 많이 있습니다. 예컨데 예수님이 부활하셨다는 이야기는 내가 직접 보지를 못했고 또 예수님이 재림 하신다는 교훈도 내가 아직 체험 하지를 못했기 때문에 증명 할수없는 일 들 입니다. 다만 성경말씀에 그렇게 기록 되었기 때문에 내가 실제로 증명해 보지는 않았지만 그렇게 될 것이라고 확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생노병사란 말은 쉽게 긍정 할수 있으나 예수님의 재림은 내가 경험 할수 없는 문제이니 많큼 믿기가 그리 쉽지 않습니다.
3.중요한 믿음
그런데 우리의 일상성의 믿음은 믿었던 일에 대해서 경우에 따라서 희망과 절망을 갖게 됩니다. 왜냐하면 그것 때문에 약간의 손해를 볼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어떤 사람은 사랑한다고 했던 사람이 배신하고 돌아설때 그 억울함을 견디지 못하여 자살하는 경우도 더러 있지만 보통 일상생활에서 겪는 불신과 신뢰의 문제는 그리 큰 인생의 문제는 아닙니다. 속았다고 생각되면 서로 다시 신뢰를 만들어 가면 되고 또 한 사람에게 너무 많이 속았으면 다시 또 다른 사람을 찾으면 됩니다. 뭐 어디 세상에 그여자 뿐입니까? 실연을 당했으면 그냥 깨끗이 잊고 다른 사람을 찾으면 됩니다.
동시에 종교적인 믿음에도 두가지가 있습니다. 그것은 인생에 결정적인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이 있습니다. 생노병사에 관해서는 믿으나 안믿으나 나의 인생에 어떤 결정적인 결과를 초래 하지는 않습니다. 그것을 더 알고 더 느끼고 사는것이나 덜 느끼고 사는 것이나 별 차이가 없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재림에 대해서는 믿으면 구원을 받고 믿지 않으면 멸망을 받는 일이기 대문에 이것은 내가 사느냐? 죽느냐?의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기에는 중대한 결단이 따르는 것입니다. 결단에 따라서 나의 생애와 나의 운명이 결정 되는 것입니다.
틸릭케(H. Thielicke)라는 신학자는 내가 가지는 믿음이 나의 삶의 전체를 결정지어 주게 되며 나의 운명을 좌우하게 되며 나아가서는 지구의 표면을 변경시키는 힘을 가지고 있다라는 말을 남겼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어떤 사실을 두고 믿을 것인가 믿지 않을 것인가 따를 것인가 따르지 말 것인가 하는 것은 그 내용에 따라 결정 할 것입니다.
4.믿음과 이성(理性,reason)
옛날 부터 사람을 지혜인이라고 불렀습니다. 지혜라는 것은 합리적 판단을 토대로 해서 형성된 세계관을 말하는데---, 때문에 이 세상은 모두 합리적인 것으로만 해석을 하게됩니다. 특히 요즈음은 합리와 논리를 따라서 판단 되었을때 믿어지고 그렇지 못한 것은 무시하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신앙에는 합리적인것과 역사적인 것이 있지만 또한 그렇지 못한것도 많이 있습니다. 예컨데 예수님이 이땅에 태어 났다는 것은 역사적인 사실을 그 어느 누구도 부인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이적을 행하였다는 사실 즉 몇가지 예로만 보아도 물로 포도주를 만들었다는 말이나 예수님이 물위를 걸으셨다는 이야기를 들을때 그것은 너무도 비 합리적이라고 생각을 하게 됩니다. 때문에 그것은 받아 들이기 어렵습니다. 그런데 신앙인들은 그러한 사건들을 믿고 있습니다. 그것을 의심하고서야 신앙생활을 이루어 갈수 없는 것이기 때문 입니다. 그렇다면 교회 다니며 예수님의 기적을 믿는 사람들은 모두 비 정상적이요 비 합리적인 사람들인가? 하는 문제 입니다. 물론 신자들 중에는 비정상적인 사람들도 있을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매우 극소수의 사람들이며 오히려 역사상의 위대한 사람들은 많은 경우에 종교인이었거나 믿음을 가진 사람들 이였다는 것을 알수 있습니다. 그 사람들의 이름을 다 일일이 제가 말할수는 없지만,
고대에 터둘리안(Tertullianus 150-220)란 사람은 로마의 백부장의 아들로 태어나 법률과 수사학을 전공하고 로마의 이름난 법률가였고 당시 학문적인 최고의 수준을 가진 사람이었는데 그는 수사학에 있어서 아주 뛰어난 인물임에도 불구하고 엉뚱하게 이런말을 했습니다. “나는 불합리 하기 때문에 믿는다즉 그는 그리스도교의 모든 진리가 역설적인 신앙 위에서 모두 증명 된다고 선언 하였습니다.
또한 세계적인 과학자 아인슈타인(Einstein,Albert 1879-1955)은 서구문명에 있어서 서구 정신계를 약 1500년을 군림해온 사람인데 그는 이런말을 했습니다. “나는 나의 전생애를 통해서 연구만 하고 살았는데 어려운 곤란에 부딪칠 때는 신앙의 덕택으로, 신앙때문에 실망하지 않을 수 있었다.” 고 말했습니다.
신앙은 결코 그의 명석한 두뇌를 사용해서 연구한 결과가 아니였습니다. 이성으로 판단하고 증명하고 난후에 신앙을 가진것이 아니고 오히려 신앙이 먼저요 그다음에 그 신앙을 사람이 가지고 있는 두뇌와 이성으로 포장하고 정리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믿음이란 내가 다 알고 난 다음에 믿는것이 아니고 믿음으로써 알게 되는 것입니다. 히브리서11:3에도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아나니--”라고 했습니다.
배우고 알고 믿는것은 지식이요, 논리를 전개하거나 깊이 사고(思考.Thought)한후 믿는것은 철학이요, 사물을 실험하고 분석한후 믿는것은 과학입니다. 그러나 역설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전능하신 권위를 믿는것은 신앙입니다.
한국에 김신조 공비의 간증을 들어 보니 교회는 나뿐 곳이다라고 처음 생각 했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내가 돈을 벌어서 아내와 자식들을 먹여서 옷을 입혀 놓으면 일요일이면 그것들이 내것을 가지고 교회 가버리니 나혼자 집에 남겨 두어 일요일이면 멍청히 집에 앉아서 견디기 힘들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내 아내가 어떤 날에는 내가 피땀흘려 번 돈을 봉투에 집어넣고는 교회 갔다가 바치니 속에 울화통이 터지더라는 것입니다. 나중에는 그가 교회에 부인과 아이들을 따라서 억지로 나가게 되었는데 자기 생각에 교회는 답답하고 꽉 막힌 사람들만 오는곳이라고 생각 했다는 것입니다. 답답한 일은 다른것이 아니고 이렇게 화창하고 좋은 날씨에 낚시가고 테니스 치러가고 골프치러 가지않고 뭣때문에 2시간을 그것에 쭈구리고 앉아 있어야 하느냐? 하는 것입니다.(그가 나가는 성락교회 목사님 설교는 2시간 함) 도무지 비 합리적인 집단으로만 보였다는 것입니다. 세상적인 눈으로 보면 얼마나 비합리적인 공동체이냐 하는 것입니다. 거기 않아 있은들 돈이 나오나 밥이 나오나 모두들 답답 친구 들이라고 생각 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1968년도에 남하한 무장 공비였던 김신조는 지금 신학을 공부 하여 전도사가 되어서 교회에 다니면서 간증하고 고백 하기를 내가 지금 깨달은 것은 교회에서 주님을 만나고 보니 주님이 나에게 무엇을 빼앗아 가고 무엇을 주느냐 하는 것을 알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아무 필요없는 나의 육신을 도모하는 일을 빼앗아 가고 나의 영혼을 살리기 위해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돌아 가셔서 구원을 안겨 주었으니 참으로 세상의 눈으로 보면 비합리적이고 어리석은것 같지만 가장 나쁜것은 빼앗아 가고 가장 귀한것을 주는곳이 교회요 예수님이라고 고백을 하였습니다.
성경에 보면 불합리 한 일들로 꽉 차 있습니다. 그러나 인간적으로 현명하며 합리적으로 결정한 사람 롯 보다도 신앙과 관용과 양보로 결정한 아브라함이 나중에는 더큰 축복을 받았습니다. 롯은 풍요해 보이는 소돔 땅을 택하였고 아브라함은 롯이 먼저 택하고 남은 땅 가나안에서 살았습니다. 그 결과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롯은 소돔과 고모라의 멸망에 재산과 아내를 잃고 겨우 목숨만 건졌고 아브라함은 만대에 복을 주는 복의 근원이 된 것입니다.
사실 우리는 엄격히 말해서 알고 있는것 보다 모르는것이 더 많고 증명되고 있는것 보다는 증명되지 않고 있는것이 훨씬 더 많은 것입니다. 합리적인 사고 방식으로 이론과 논리를 가지고 해결 한다고 하다 결국은 그것으로 해결을 못보고 넘어 가는 것도 엄청나게 많습니다. 논리와 합리란 결국 인간의 좁은 소견안에 갖혀 있는 것이요 인간이 가진 한면만을 설명하는 것이기 때문에 인간이 가지는 각 가지의 많은 문제들은 신앙과 믿음으로라야 되는 것입니다.
5.고백하는 신앙
>갑돌이와 갑순이는 한마을에 살았습니다. 둘이는 서로서로 사랑을 했습니다. 그러나 둘이는 모르는척 했습니다. 안그런 척 했습니다. 2절 그러다가 갑순이는 시집을 갔더랍니다. 갑돌이도 화가 나서 장가를 가 버렸습니다. 3절 어느날 갑돌이와 갑순이는 시장(Dillons)에서 만났습니다. 갑돌이가 말합니다.“왜 우리가 결혼을 못했지?” 정답: 말 안했기 때문에 말.
오늘 본문에는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믿습니다라는 고백이 절대로 필요한 것입니다.
갑돌이와 갑순이는 각자 다른 사람을 만나서 시집 장가 갔으니 괞찮지만 유일하게 한길밖에 천국길, 주예수 믿는길은 마음으로 믿고 그 믿음을 입술로 고백해야지 그렇지 못하면 고백이 없으므로 패망을 할수도 있습니다. 이 고백은 생명전체를 좌우하는 치명적인 사건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 오늘 다시 한번 예수님 저는 예수님을 믿습니다. 주님이 내 마음속에 오시옵소서라고 다시 고백 합시다
 
어떤 청년이 목사님에게 이렇게 질문을 합니다.
@ 신구약 성경을 내가 다 읽지도 못했는데 어떻게 하나님을 믿습니까?
당신은 사랑하는 사람이 있습니까? . 결혼할 생각입니까? . 당신의 사랑하는 사람에 대해서 더 알아 보시지요. 국민학교때 학교점수도 더 알아 보시고 7살때 부모님 속썩인것 없는지 좀더 알아 보시지요? 과거를 다 알지도 못하면서 어떻게 결혼을 할 생각이세요?
@ 교회 일년밖에 안 다녔는데 어떻게 하나님을 믿습니까?
당신은 그녀와 얼마를 사귀었나요? 1년입니다.
당신은 그녀와 일년밖에 못 사귀었는데 어떻게 결혼을 합니까?
@선한 행위는 전혀 하지 못했는데 어떻게 하나님을 믿습니까?
당신은 그녀에게 보석 반지도 사주지도 못했는데 어떻게 결혼 합니까?
옳습니다. 그녀의 과거를 낯낯이 다 알지 못해도 결혼할수 있는것처럼 성경 신구약을 모두 다 읽지를 못해도 하나님을 믿고 그의 자녀가 될수 있읍니다. 성경에 성경을 다 읽어본 사람은 구원을 얻으리라고 하지 않았고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자는 구원을 얻으리라고 사도행전221절에 말씀하였습니다.
옳습니다. 그녀와 1년밖에 안 사귀었어도 그녀와 결혼할수 있습니다.
1년만 사귀어도 결혼할수 있는것처럼 주님의 약속을 믿고 믿음을 고백하면 주님의 자녀가 될수 있습니다.
신앙이란? 하나님을 사랑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서 성경을 읽으면 하나님의 사랑이 깊숙히 가슴에 와 닿는 것입니다. 만약에 믿지 않고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고 성경을 연구하면 그 하나님은 당신에게 무서운 하나님으로 발견 될 것입니다. 어떤 여자에 대해서 사랑하지는 않고 그의 비리만 조사 한다면 결국 그와는 결코 결혼 할수 없고 그가 아주 싫어 져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나 결혼한후 그에 대해서 알면 더 친근미 있는 관계가 형성되는 것입니다. 먼저 믿고 고백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그를 사랑하면 주님의 그사랑의 깊이와 높이와 넓이를 깊이 알고 감사 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는 것입니다.
조금 알아도 고백하고 약간의 의심이 생겨도 나는 하나님을 믿노라는 고백부터 먼저 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하면 의심이 믿음으로 바뀌어 질 것입니다.
너희들이 사람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나도 하나님 앞에서 너희를 안다고 하리라고 마태10:32에 주님이 말씀 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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