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turday, March 5, 2016

신학이란 무엇인가?
-알리스터 맥그래스(Alister E. McGrath)-


1부 길라잡이: 시대 . 주제 . 인물로 본 기독교 신학
교부시대: 100-700 (NO 1)(요약-서정길)

기독교는 자신을 유대교의 연장이자 유대교가 발전한 것이라고 보았으며, 전통적으로 유대교와 관계가 있는 지역들로 시작 될수 있다.
기독교는 기원후 1세기에 유대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팔레스틴에서 번성 하였고 점차 주변으로 확산 되었는데 다소의 바울은 초기 전도자로서의 역할이 지대하였다.

1. 초기 신학 활동의 중심지들
기독교는 1세기 말에 이르러 지중해 동쪽 지역에 널리 퍼졌고 로마제국의 수도인 로마에서도 튼튼히 자리를 잡았다. 그러나 당시 로마와 콘스탄티노플 양쪽 교회 지도자들의 갈등으로 말미암아 로마는 서방교회로 콘스탄티노플은 동방교회로 자리를 잡아 나갔다.

(1) 이집트(그리스어 사용)- 특히 이집트에 위치한 알렉산드리아는 기독교 신학 교육의 중심지로 등장 하였고 이 도시는 오랜 세월 플라톤 전통과 접촉하였다. 흔히 알렉산드리아 학파라 일컷는 이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정체성과 성서해석 분야를 중심하고 있다.(자세한 것은 이 책 310, 671-673)

(2) 터키(그리스어 사용)-안티오키아(안디옥) 와 카파도키아(갑바도기아) 지역인데 이곳은 이른 시기부터 기독교가 튼튼하게 정착 하였다. 이중 성경에 기록된 대로 안티오키아(안디옥) 는 교회 초기 역사에서 여러 차례 중요한 역할을 하였고 빠르게 기독교 사상을 이끄는 중심지로 자리 잡았다. 알렉산드리아와 마찬가지로 안티오키아에서도 그리스도론 및 성서해석과 관련해 독특한 방식이 발전하였다. 특히 4세기에 카파도키아 교부들로 인하여 삼위일체 교리에 큰 기여가 있었다.

(3) 아프리카 북서부(라틴어 사용)-오늘날 알제리에 위치한 지역으로써 지중해의 주요도시이다. 이곳에 기독교가 유입되던 시대에는 로마의 식민지였다. 이지역에서 활동한 주요한 사상가들로는 테르툴리아누스, 카르타고의 키프리아누스, 히포의 아우구스티누스가 있다.

이 이외에도 지중해 지역 다른 도시들 즉 로마와 콘스탄티노플, 밀라노, 예루살렘 등에서도 신학적 성찰이 활발 하였다.

2. 교부시대 개관
개혁교회, 동방정교회, 로마카톨릭교회, 루터교회, 성공회 등 주류에 속하는 기독교 교회들이 교부시대를 가리켜 기독교 교리의 발전과정에 우뚝선 길잡이로 여긴다. 교파들은 각기 자기들이 초기교회의 사상가들의 견해를 계승하고 확장 했으며 나아가 필요한 경우 비판하는 일도 한다고 여긴다.

(1) 용어해설
*교부 -‘교부’ patristic 라는 말은 아버지를 뜻하는 라틴어 페테르 pater에서 유래 하였으며 초기 교회 교부들이 활동한 시대와 그 시기에 발전한 독특한 개념들을 가리킨다.
*교부시대 - 이시대는 명확하게 한정하기가 어려우며 대체로 신약성경의 기록이 끝난 약 100년경부터 칼케톤 공의회 454 년까지를 본다.
*교부신학 - 교부들에 관한 연구하는 신학 분과를 뜻하는 것이다.
*교부학 - 문자적으로는 신학 즉 하나님에 관한 연구를 뜻하지만 근래에 와서는 독자들이 교부 사상가들의 주요 개념과 그 개념들의 해석에 따르는 문제들을 손 쉽게 다룰수 있도록 해주는 교부문헌에 대한 해설서라 할수 있다.

(2) 교부시대의 신학적 의제
교부시대는 처음 유대교와 기독교와의 관계 문제였다. 그것은 할례문제와 음식규례 문제와 구약성경을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가 하는 문제들이었다.
2:28-29 “무릇 표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 아니요 표면적 육신의 할례가 할례가 아니니라
오직 이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며 할례는 마음에 할지니 영에 있고 율법 조문에 있지 아니한 것이라 그 칭찬이 사람에게서가 아니요 다만 하나님에게서니라
그리고 교회 초기에서는 국가로부터 자주 박해를 당했으므로 신학논쟁 보다는 변증론 문제가 쟁점이었다. 초대교회 유스티누스 (Justinus Martyr 100-165) 와 같은 저술가들은 기독교의 믿음과 실천을 설명하고 옹호해야 하는 일로 적대적인 사회에 대항했었다. 또한 초기에 서방의 리옹의 이레나이우스(Irenanaeus of Lyon 130-200) 와 동방의 오리게네스(Origenes, 185-254)처럼 탁월한 신학자들이 있었으나 신학적인 논의는 교회의 박해가 끝나고 나서 부터였다.
4세기에 콘스탄티누스가 회심하고 뒤이어 로마황제가 되면서 신학 논의를 위한 분위기가 형성 되었다. 콘스탄티누스는 황제로 다스리는 동안 306-337 교회와 제국의 화해를 성공적으로 이루어냈으며 그 결과 교회는 궁지에 몰려 있다는 피해의식에서 풀려나게 되었다. 321년 콘스탄티누스는 일요일을 공휴일로 선포 하였다. 하여 신학은 교회의 비밀 회합이라는 은밀한 자리에서 벗어나 로마제국 전역에서 공적인 관심과 흥밋거리가 되었다. 결국 교부시대 후기에는 기독교 역사상 절정기로 발전하게 되었고 대규모 논쟁과 불일치 가운데서도 상당한 합의가 이루어진 시기라 할 수 있다.
(정치적 안정의 시기는 신학 연구가 활발하여 깊이있게 다루어 졌고 다 나아가 널리 펼쳐저 갔었고 정치적 압박 즉 핍박의 시기는 개인적 공동체적인 신앙의 질이 단단해 졌다고 볼수 있다.-정길생각)
다음은 교부시대를 신학을 공부하는 학생들이 어렵게 여기는 일들을 4가지로 살펴본다.
첫째/ 교부시대에 다루어진 문제들 중 적지않게 현대세계에서 부적절하다는 생각이다. 그러나 교부시대를 종교개혁시대와 비교하면서 보면 흥미를 가질수 있다.
둘째/ 교부시대에 다루어진 논쟁들은 상당부분 철학적인 개념들이기에 독자들이 그 당시 철학적 쟁점들을 어느 정도 알고 있을 때 그 의미를 이해할 수 있다. 플라톤의 대화편에 나오는 관념들을 어느정도 알고 있다고는 하나 이 관념들이 교부시대를 거치며 지중해 주변 세계에서 커다란 비판과 발전의 과정을 겪었다. 그러므로 중기 플라톤 주의와 신 플라톤 주의는 원래 플라톤 사상과 다르고 서로 간에도 다르기에 교부시대에 나온 많은 철학적 개념들이 생소해서 제대로 이해하기 어렵게 만든다. 그러나 그 논쟁들 속에서 교부들의 신학을 깊이있게 이해 할수 있다.
셋째/ 교부시대는 교리적으로도 요동치던 시대이다. 예컨대 니케야 신조’ ‘그리스도의 두 본성’ ‘정경성서등 확정한 일도 4세기에 이루어 졌기에 이 혼란들이 이해하기가 어렵다. (그러기에 안정적인 이해를 넘어서서 혼란스러운 일도 보고 배우려는 자세가 있어야 한다.-정길생각-)
넷째/ 교부시대에는 언어적인 이유도 있는데 헬라어를 사용하는 동방교회와 라틴어를 사용하는 서방교회로 분열 되었으므로 동방교회 신학자들은 일반적으로 철학에 관심을 두면서 신학적 사변에 몰두 하였고 서방교회에서는 철학이 신학에 끼어드는 것을 반대하고 오직 성서속에 나타난 교회들을 탐구하는 것으로만 여겼다.

(여기에서 비교 탐구하여 성경의 기본입장과 복음의 이해와 선교를 위한 방편으로 구분하면서 두루 살펴볼 필요가 있다-정길생각)
-3/4/2016 Wycliffe University 서정길 강의록에서 카피해 옴- 
<사진/ 경기도 수원, 수원성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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