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테르툴리아누스(Tertulliannus, Quintus Septimusflorens 약160-225)
서방교회의 신학자. 그는 칼타고 로마 백부장의 아들로서 출생. 처음에 법과 수사학, 그리고 희랍 고전을 배웠는데 이러한 학문은 당시 최고의 학적 수준을 대표한 것이었다. 그 후 로마의 법률가로서 명성을 떨친바 있었다.
터툴리아누스가 그리스도로 개종한 것은 아마도 195-6년 인 것 같다. 그후 칼타고로 돌아가 신부가 되었으나 주교직에는 오르지 아니했다. 젊었을 때에 그는 이교적인 사치와 방탕 그리고 향락에 빠졌으나 회심 후 에는 엄격주의자로서 처신에 신중을 기하였다. 그는 207년경 몬타노스 운동에 참가 한 탓으로 로마교회 열성에 참여하지 못하였다. 그러나 그의 사상은 정통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그는 철학에 정통 했었으나 알렉산드리아 학파처럼 철학과 그리스도교의 조화를 도모하지 않았고 끝까지 그 차이와 무관계성을 주장했다. 그리고 희랍철학은 복음의 전위도 아니며 오히려 이단의 선구라고 보았다. 북 아프리카 학파에 속하고 그 대표자 격이 터툴리아누스는 이레나에우스를 통하여 전해진 소 아시아의 전통을 강하게 영향받고 있다. 개종하기 이전에 법률가가 아니었다고 부정 하였다. 한편 그의 저서에는 스토아주의적인 흔적도 없지 않았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전제를 가지고 볼 때 터툴리아누스는 다분히 사변적이기 보다는 실천적 동기에서 출발하고 있지만 그는 철학적 사고나 영지주의적 사상을 완전히 탈피하지는 못했다. 그는 이레나에우스의 주장을 이어받아 사도의 전승을 교회의 권위로 받아 들이는데 주저하지 않았다. 교회는 사도들의 전승을 보관하는 유일한 장소이며 또 사도의 계승자인 주교들은 그 전승의 관리자라고 주장한 것이다. 교부 가운데서 터툴리아누스 만큼 교회, 성서, 전승, 권위를 강조한 자도 찾아 보기 어렵지만 그의 사고방식은 역설적인 것이 많았다. 그는 “신앙의 표준과 상반되는 것을 모르는 것이 곧 모든 것을 다 아는 것이다” 라고 하였고 “나는 불합리하기 때문에 믿는다”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그는 로고스의 신학을 분명히 가지고 있었다. 성부와 성자는 신적 존재인 것과 신성을 공유한 점에서 동일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으로서의 본질도 동일하다고 하였다. 그의 그리스로론의 신성 인성 문제에서는 “두 성질은 각각 다른 속성을 지니고 있으며 두 성질 사이에는 혼돈이 없고 신성과 인간성이 결합되어있다”라고 하였다. 그리고 이어서 그의 인간성은 신성과 결합되어 있기 때문에 이것을 그는 ‘수난’이라고 표현 하였다. 즉 “하나님이 진정으로 십자가에 못 박혔다”고 주장한 것이다. (이것은 몰트만에게 영향을 주었으리라고 본다 -정길생각-)
(이하 그리스도교 대사전 p1057 참조, -기독교서회- 조선출 19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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