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카르타고의 키프리아누스(Cypriannus of Carthago (258년 사망)
칼타고에서 출생. 그의 부모는 이교도였다. 칼타고에서 순교함. 그리스도교로 개종하기 전에는 유명한 수사학자였다. 그가 세례를 받고 그리스도인이 된 것은 246년 경이었다. 몇 년 되지않은 그는 칼타고의 주교로 임명됨. (248/9) 이때 성서에 대한 깊은 이해를 가지고 있었다. 249년 데키우스 황제의 박해로 칼타고 부근에 은신 하였고 서신으로 교회를 지도 하였다. 박해시에는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교회를 떠나 난을 피했기 때문에 박해가 그치면서 복귀문제가 대두 했다. 이때 키프리아누스는 엄격한 태도로 이에 반대하고 나섰다.(박해로 교회를 떠난이들에 대해서) 그러나 곧 그 태도는 완화되어 이교자들의 복귀를 허용 하기에 이르렀다. 이문제로 그는 노바티아누스와 논쟁을 벌였고 로마의 주교 스케파누스 1세와 또 논쟁이 있었다. 키프리아누스는 교회를 선과 악으로 이루어져 있는 인류의 구원제도라고 보았다. 그래서 그는 “교회밖에는 구원이 없다” 라는 말을 하였고 “교회를 어머니로 갖고 있지 않는자는 하나님을 아버지로 가질수 없다” 라고 말하였고 감독을 비판하는 자는 반역이라고 하였다. 그는 유아에게도 죄가 있다고 하여 유아세례를 주장 하였다. (이하 그리스도교 대사전 p1053 참조, -기독교서회- 조선출 19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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