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아타나시우스(Athanssion, Magnus(295?-373?)
알렉산드리아의 감독, 교회박사, 성인. 알렉산드리아에서 출생하여 이곳 신학원(교회학교)에서 교육을 받았다. 알렉산드리아의 감독인 알렉산더 밑에서 집사일을 보았다. 그러다가 325년 니케아총회의 회의에 참석 하였고 328년에는 알렉산더를 이어 알렉산드리아의 감독이 되었다. 그는 반 아리우스파에 속해 있었다. 그리하여 아리우스파와 황제의 세력에 밀려 336년 트리르로 추방되었다가 337년 콘스탄티누스가 죽자 돌아왔다. 그러나 339년에 다시 로마로 추방 당했다가 346년에는 애굽의 사막지대로 추방(이것이 네 번째였다.) 당했다. 이렇게 17년동안 추방의 세월을 보내다가 381년 콘스탄티노풀리스 회의에서 아리우스파에 승리하여 정통신앙고수에 기여 하였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으로써 어떻게 타락한 인간을 하나님의 형상을 가진 인간으로 회복 시키느냐? 의 문제를 다루었다. 339년에서 359년 어간에 그는 니케아 신조를 수호하는 일련의 저서를 집필 하였다. 본래 아리우스의 “아들은 신이 아니므로 구원 하거나 불변적인 존재가 아니며 성부보다 낮게 존재 하였다.” 에 대하여 아다나시오스는 “아들은 아버지의 본질에서 나온 존재요 아버지와 동일 본질이다” 라고 주장 하였다.
그리스도론에서 아다나시오스는 희랍의 사변적인 로고스론을 구속사적인 그리스도론으로 바꾸어 놓았다. 말하자면 그리스도의 양성론과 삼위일체론의 기초를 놓았다. 그는 또한 수도원에 관한 지식을 서방교회에 소개한 최초의 사람으로도 알려져 있다. (이하 그리스도교 대사전 p641 참조, -기독교서회- 조선출 1972)
알렉산드리아의 감독, 교회박사, 성인. 알렉산드리아에서 출생하여 이곳 신학원(교회학교)에서 교육을 받았다. 알렉산드리아의 감독인 알렉산더 밑에서 집사일을 보았다. 그러다가 325년 니케아총회의 회의에 참석 하였고 328년에는 알렉산더를 이어 알렉산드리아의 감독이 되었다. 그는 반 아리우스파에 속해 있었다. 그리하여 아리우스파와 황제의 세력에 밀려 336년 트리르로 추방되었다가 337년 콘스탄티누스가 죽자 돌아왔다. 그러나 339년에 다시 로마로 추방 당했다가 346년에는 애굽의 사막지대로 추방(이것이 네 번째였다.) 당했다. 이렇게 17년동안 추방의 세월을 보내다가 381년 콘스탄티노풀리스 회의에서 아리우스파에 승리하여 정통신앙고수에 기여 하였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으로써 어떻게 타락한 인간을 하나님의 형상을 가진 인간으로 회복 시키느냐? 의 문제를 다루었다. 339년에서 359년 어간에 그는 니케아 신조를 수호하는 일련의 저서를 집필 하였다. 본래 아리우스의 “아들은 신이 아니므로 구원 하거나 불변적인 존재가 아니며 성부보다 낮게 존재 하였다.” 에 대하여 아다나시오스는 “아들은 아버지의 본질에서 나온 존재요 아버지와 동일 본질이다” 라고 주장 하였다.
그리스도론에서 아다나시오스는 희랍의 사변적인 로고스론을 구속사적인 그리스도론으로 바꾸어 놓았다. 말하자면 그리스도의 양성론과 삼위일체론의 기초를 놓았다. 그는 또한 수도원에 관한 지식을 서방교회에 소개한 최초의 사람으로도 알려져 있다. (이하 그리스도교 대사전 p641 참조, -기독교서회- 조선출 19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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