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이란 무엇인가?
-알리스터 맥그래스(Alister E. McGrath)-
1부 길라잡이: 시대 . 주제 . 인물로 본 기독교 신학
교부시대: 약 100년-700년 (NO 1)
(요약및 정리-서정길)
기독교는 자신을 유대교의 연장이자 유대교가 발전한 것이라고 보았으며, 전통적으로 유대교와 관계가 있는 지역들로 시작 될수 있다.
기독교는 기원후 1세기에 유대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팔레스틴에서 번성 하였고 점차 주변으로 확산 되었는데 다소의 바울은 초기 전도자로서의 역할이 지대하였다.
1. 초기 신학 활동의 중심지들
2. 교부시대 개관
3. 주요 신학자들
(1) 순교자 유스티누스(Justinos 100-165)-
(2) 리옹의 이레나이우스(Irenaeus of Lyons 140?-200?)
교부의 한 사람으로 프랑스의 리옹에서 그의 생애를 보냈기 때문에 그를 흔히 리옹의 이레나에우스로 불리워진다. 140년경에 소아시아의 서머나에서 태어나 이곳에 성장 하였고 로마를 거쳐 프랑스의 리옹으로 간 것 같다. 여기서 신부로서 일하다가 177년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황제의 박해가 있어 리옹 지방의 신도들이 보낸 사절로서 로마에 파견 되었다. 그가 리옹으로 돌아온 것은 178년이었는데 리옹의 주교로 있던 포티누스가 순교하여 그의 뒤를 이어 주교가 되었다.
당시 이교사상과의 대결은 죽음을 각오한 태세가 아니고는 감당하기 어려웠다. 이레나에우스는 순교를 각오하고 이단과 사웠다. 그는 이단 논박(Adversus Haereses)이라는 책을 5권이나 저술 하였는데 주로 영지주의 이단을 논박하기 위하여 집필 되었다.
이레나에우스는 신학적으로 소 아시아 학파의 대표자 격이었다. 이 학파는 요한의 활동을 계승하여 생겨난 것이며 성서에 대한 명확한 이해와 신앙과 대내적인 회유책 그리고 이단에 대한 논쟁들이 그 특징으로 되어있다.
이레나에우스의 신학이 요한 사상에 근거를 두었다는 점도 주목할 만한 가치가 있지만 한편 그가 당시의 다른 어떤 신학자들 보다도 바울의 영향을 받았다는 점도 중요하다.
이레나에우스는 처음부터 종교문제에 있어서 철학적 사변을 반대 하였다. 그는 하나님은 사색을 통해서가 아니라 계시를 통하여 우리에게 알려 진다고 주장했다. 그러므로 창조 이전에 하나님이 어떠했고 무엇을 생각했느냐의 질문은 의미가 없다고 보았다. 그리고 계시의 가장 구체적인 실현이 그리스도라고 주장한 것이다.
이레나에우스의 신학은 역사적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출발 하였는데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계시라고 보았다. 그의 그리스도론은 로고스론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인격 중심이었다.
이레나에우스의 신학 전체에 있어서 근본적인 원리가 되는 것은 구원론이었다. 영지주의에 대항해서 창조의 하나님은 구속의 하나님과 동일한 존재라는 근본적인 사상을 주장한 것이다. 하나님의 영원한 계시자인 신 인간(神人間)이신 그리스도가 인간 구원의 중보자이다.
아담은 그의 자유의지를 남용하여 하나님께 불순종하여 온 인류가 타락하고 하나님의 형상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그 결과는 죽음이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인간이 상실한 하나님의 형상을 이루게 하기 위하여 네 단계의 계약을 맺었다는 것이다. 첫째는 노와와의 계약, 둘째는 아브라함과의 계약, 셋째는 모세를 통한 율법계약, 넷째는 복음 곧 그리스도를 통한 계약이라고 보았다.
그리스도는 둘째 아담으로서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을 이룰 수 있는 가능성을 그리스도를 통하여 다시 회복하게 되었다. 이것을 이레나에우스의 반복설(recaptulation theory) 이라고 한다. 이레나에우스는 그리스도교를 변증하는 가운데서 영지주의 사상을 극력히 반박하고 나섰다. 그는 영지주의 사상을 논박할 때 성서에다 그 근거를 두고 반론을 전개하였다.
이레나에우스가 주로 문제 삼은 영지주의 사상은 정신과 물질의 이원론으로써 이론을 전개해 나가는 발렌티누스파의 선악의 이원론으로써 이론을 전개하는 마르키온 파의 주장이었다. 그들은 물질은 악하다는 전제하에서 출발하고, 그러므로 이 물질을 만든 창조주 하나님은 최선의 신이거나 최고의 신 일수 없다는 것이다. 이들은 구원이란 이 물질 세계를 완전히 탈피하여 순전히 영적인 존재로 되어 프레로마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것을 위하여 특별한 지식이 필요하고 또한 자기들만이 그러한 지식을 갖고 있다는 주장이었다.
이러한 영지주의의 사상을 이레나에우스는 극력히 반대하고 성서와 전통적인 권위에 입각하여 반박 하였다.
영지주의 사상가들이 하나님을 참 신이 아니라고 한데 대하여 이레나에우스는 구약과 신약의 모든 선지자들과 사도들이 하나님만을 참 신으로 믿었다고 고백한 것이다.
이레나에우스는 사도후 시대에 있어서 신학자라는 이름으로 불리워진 최초의 사상가이자 저작가로 간주 되어 있다. 제베르그는 사도시대로부터 교회에 전해진 유산을 보려면 이레나에우스의 신학이 가장 유용한 자로일 것이라고 지적한바 있었다.
<그리스도교 대사전 p 856 –기독교 서회 19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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