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day, May 30, 2011

홀가분 하게

유대인들이 성경 다음으로 좋아 하는 책은 그들의 역사와 전통과 각가지 삶을 사건으로 적어놓은 탈무드입니다. 어느날 탈무드를 공부하고 싶은 사람이 랍비를 찾아 왔습니다. 랍비는 그가 과연 그 어렵고 유익한 탈무드를 과연 배울수 있는 자격이 있는지를 시험해 보겠다고 하였습니다. 그 사람을 꼭 탈무드를 배우고 싶기 때문에 시험을 처서라도 허락을 해 달라고 하였습니다. 이제 랍비가 질문을 하였습니다.
“두 사내 아이가 여름 방학에 집에 꿀뚝 소재를 하였다, 한 아이는 얼굴이 새까맣게 되어 굴뚝에서 내려 왔다. 그리고 또 한아이는 전혀 얼굴에 검정이 묻지 않고 말쑥한 차림으로 내려 왔다 그렇다면 누가 얼굴을 씻을 것이라고 생각 하는가?” “그는 물론 얼굴이 더러운 사내 아이가 얼굴을 씻을 것입니다.” 랍비는 차갑게 “그러기에 그대는 아직 탈무드를 펼 자격이 없다 돌아 가거라 그리고 답은 내가 가르쳐 주겠다. 두 사내 아이는 굴뚝을 소제하고 하나는 말쑥한 차림으로 하나는 더러운 얼굴을 하였는데 서로 얼굴을 보게 되었다 그러자 얼굴이 말쑥한 사내 아이는 내 얼굴도 저 아이처럼 얼굴이 새까맣게 되었으리라고 생각할 것이며 얼굴이 새까만 아이는 친구의 얼굴을 보면서 내 얼굴도 저렇게 검정이 묻지 않고 말쑥할 것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여기 까지 말하자 그 탈무드를 배우겠다고 하던 사람은 랍비의 말을 자르면서 “네 알았습니다. 얼굴이 말쑥한 아이가 얼굴을 씻을 것입니다.” 그랬더니 랍비의 하는말 “그만 두세 그대는 아직도 탈무드를 배울 자격이 없다네 돌아가게” 그는 낙담을 하면서 “아니 그러면 도대체 탈무드에서는 무어라고 말합니까?” 랍비는 대답을 합니다. “내가 답을 알으켜 주지 두 사내 아이가 굴뚝을 소제하고 있었다면 같은 굴뚝을 소제 했을 테인데 한 사내 아이는 말쑥하고 한 사내아이는 얼굴이 더러워져 있다는 것은 있을수 없는 일이네”
이 이야기는 그냥 웃어 넘기려고 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이토록 사람이란 그 마음이 항상 더러워져 있고 그 누구 한 사람도 내 마음은 깨끗하다고 자부 할 사람이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총명함이 있다해도 보잘 것 없으며 약간의 총명 그것 마져도 무관심 때문에 곧 잃어 버리고 만다. 우리는 자신이 지니고 있는 내적 성찰력도 잘 깨닫지 못하기 일쑤다. 우리는 죄악을 행하기 일쑤이며 그러면서 자기 행위에 대해서 변명을 하다가 더 나쁜 죄악을 행한다. 우리는 남의 사소한 잘못을 힐책 하면서 자신의 큰 잘못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살아간다. 그대가 자신 자신과 더불어 있지 않을때에는 어디에 있단 말인가? 그리고 그대가 자신의 일을 제쳐놓고 동분서주 하면서 모든일에 참견할 때 과연 무슨 소득이있겠는가? 마음의 평화와 참다운 단일 목표를 바란다면 그대는 자기 자신을 주시해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그대가 온갖 일시적인 걱정 거리를 물리치고 항상 홀가분한 몸가짐을 유지 한다면 영적으로 큰 발전을 이룰 것이다." 고대 유명한 신앙인 토마스 아퀴나스(Thomas Aquinas 1224~5-1274)의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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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네이도가 지나간 현장에서


                                                   
캘리포니아에서 10 살다가 스프링필드 미주리 주로 이사온지 4개월째, 그동안 생소한 지역이지만 지역민들의 말한 미주리의 장점은 없지 않았다.  첫째:교회가 아주 많다고 한다. 그래서 항상 은혜의 삶을 살고 있다(?). 둘째:어느도시보다 중국음식점이 가장 많고  거의 한인이 운영하고 있다.  셋째: 한류와 난류가 부딪치는 곳이므로 청정지역이라고 한다.미국에서 공기가 가장 좋은 도시라는 것이다. 이것을 나는 이전에 살던 지역 사람들께 이메일로 자랑하였고 남쪽으로30 거리 브랜손(Branson) 미국 컨추리 뮤직 쇼도 있는 유명한 곳이므로 놀러 한번 오라고 했다. 그런데 일인가?  청정지역의 장점이 가장 악조건으로 둔갑하여 밀려오기 시작한다.  토네이도이다. 라디오에서는 비상 소리를 테스트 한다는 실험소리가 음악을 중단한채 몇번 울리더니  지난 일요일 (522) 태풍, 토네이도가 가까운 곳에 일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내가 사는 집도 밤마다 번개와 천둥소리가 요란하다.  번개와 천둥소리의 거리가 1초도 안되리만큼 괭음으로 가깝게 폭풍과 함께  침대가 흔들릴 정도로 덮치기 시작한다.  밤새 천둥소리 바람소리 쏫아지는 빗소리를 들으며 새벽 5시를 맞이 하였다.  컴퓨터 이메일을 여니 한국에 친지들이 살아있느냐? 안부 멧시지이다. 그런데 내가 걱정되는게 아니라 목회하는 교인들이 괜찮느냐는 질문이다.  교인들에게 아무 소식을 듣지 않았기에 괜찮다고 답한 후에  나는 목숨도 중요하기에 토네이도가 오면 어떻게 것인가를 생각하며 연구하기 시작했다. 첫째 문제는 나의 집은 지하실이 없다.  느낌이 이후 다른 지하실을 찾다가는 가는 중에 봉변을 당할 있어서 할수 없이 안에서 가장 좁은 공간, 바깥 벽을 직접 하지않는 중간공간을 찾아 화장실로 정하고 머리를 다치지않으려고 쓰레기 통을 깨끗이 비우고 화장실 갔다 놓았다.  그리고  앗차 정신을 차리고 바로 교인들 몇몇 가정에 전화를 하였다.  휴스턴(Houston, MO) 식당을 경영하는 J집사님  집은 웨츠레스가 집에서 지난주일 지하실로 피신했다가 잠을 설치고 겨우 출근했다고 하며  클로버(Clever, MO)에는  P집사님의 식당에는 지금 동네 사람들이 모여서 식사는 하지않고 모두 모여앉아 TV 열심히 시청하고 있다고 하며, 맨스필드(Mansfield, MO) 사는 K 집사님은 아들이 조플린(Joplin, MO) 사는데 아들의 집에 반경 1마일이나 되는 최대의 토네이도가 시속200마일 속도로 바로 1마일 떨어진 곳을 휘쓸고 지나갔다는 것이다.  나는 전화로 소식을 듣기만 해도 앗질하였다.. K 집사님의 아들이 경영하는 식당에 월요일에는 사방이 고요하고  손님이 사람도 오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곳은 지금132(27 현재) 생명을 잃었다고 한다.

이스라엘의 진정한 실체

911 사건의 주범임을 피할수 없었던 라덴의 죽음 이후 미국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평화를 위해 모색하는 수순을 밟을수 밖에 없어 지난 19 오바마 대통령은 중동의 청사진을 발표하면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국경선은 1967(3 중동전 이전)경계에 근거해야 한다고 하자 이스라엘 총리 베먀민 네타냐후는 이스라엘의 실체를 희생 시키면서 팔레스타인이 존립할 없다라는 말로 즉각 제안을 거부했다고 한다. –한국일보 5-21-11, C-10-
물론영토의 양보를 통한 평화를 가질수 있다고 하는 명분에는 동의할 있다 할찌라도 결코 분활되는 예루살렘 수도에 대한 애착과  그토록 그들의 오랜역사적 민족과 국가의 아픔속에 이어져온 경계는 그리 간단하지만 않은 민족의 정체성과 정치와 종교적 의미가 깊이 담겨져 있을수 있는 땅이기도 하다.
영성 지도자 헨리 나우엔(Henri. M. Nouwen) 그의 저서 영성수업에서 예수님은 광야의 시험에서 분의 핵심정체를 빼앗아 가려는 유혹을 받았다. “너는 돌로 떡을 만들수 있는 자다. 너는 성전에서 뛰어 내릴수 있는자다. 너는 다른 사람들로 권세에 절하게 만들수 있는자다.” 그러나 예수님은 세번 아니다, 아니다, 아니다, 나는 하나님의 사랑받는 자다라고 말씀 하셨다. 하였다. (4:1-13, 3:22)
세상은 끊임없이 성공, 인기, 권한, 지배를 부추키고 있지만 그러나 그런중에 자신도 알아채지 못하게 놓치고 있는것이 있는데 그것은 지금 내가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받는 인가?” 하는 질문에 예스라고 분명히 대답할수 있는 삶을 세워 나가지 못하고 눈에 보이는 작은것에 연연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자신의 중요한 것을 희생하면서 공조를 이루거나 평화를 만들어 나가는 일에 있어서 남의일은 쉬워 보이나 각자 개인 자신이나 나라의 이익문제에서는 대단히 힘든 일이 아닐 없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그러나  땅의 경계를 조금 넓히고, 권한을 조금 가지고, 예루살렘 관광객의 수입으로 인한 경제적인 문제에 대한 양보할수 없는 문제를 붙들고 있는 동안(물론 그것보다 크고 의미있는 문제들은 많겠지만--) 겪어야 끊임없이 닥아올 많은 피해들을  계산해 본다면 눈에 보이는 중요하다고 여긴 것을 땅에 내려 놓을 있다면 다시 붙잡을수 있는 것이 없지는 않다는 생각이다.  이스라엘은 과거 구약의 역사속에 가졌던 것의 선민의식에서 과거를 회상하고 살아가는 것이아니라 한쪽 팔을 잃어 버리고서라도  진정한 실체가 무엇인지를 알고 생명과 평화와 현재와 미래를  하나님의 사랑받는 이스라엘 살아가기를 결단 한다면 어쩌면 이익을 얻는 결과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