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1 사건의 주범임을 피할수 없었던 빈 라덴의 죽음 이후 미국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평화를 위해 모색하는 수순을 밟을수 밖에 없어 지난 19일 오바마 대통령은 중동의 청사진을 발표하면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국경선은 1967년(3차 중동전 이전)경계에 근거해야 한다고 하자 이스라엘 총리 베먀민 네타냐후는 “이스라엘의 실체를 희생 시키면서 팔레스타인이 존립할 수 없다”라는 말로 즉각 그 제안을 거부했다고 한다. –한국일보 5-21-11, C-10-
물론영토의 양보를 통한 평화를 가질수 있다고 하는 명분에는 동의할 수 있다 할찌라도 결코 분활되는 예루살렘 수도에 대한 애착과 그토록 그들의 오랜역사적 민족과 국가의 아픔속에 이어져온 경계는 그리 간단하지만 않은 그 민족의 정체성과 정치와 종교적 의미가 깊이 담겨져 있을수 있는 땅이기도 하다.
영성 지도자 헨리 나우엔(Henri. M. Nouwen)은 그의 저서 “영성수업”에서 예수님은 광야의 시험에서 그 분의 핵심정체를 빼앗아 가려는 유혹을 받았다. “너는 돌로 떡을 만들수 있는 자다. 너는 성전에서 뛰어 내릴수 있는자다. 너는 다른 사람들로 네 권세에 절하게 만들수 있는자다.” 그러나 예수님은 세번 “아니다, 아니다, 아니다, 나는 하나님의 사랑받는 자다” 라고 말씀 하셨다.고 하였다. (눅4:1-13, 3:22)
세상은 끊임없이 성공, 인기, 권한, 지배를 부추키고 있지만 그러나 그런중에 자신도 잘 알아채지 못하게 놓치고 있는것이 있는데 그것은 지금 ‘내가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받는 자’ 인가?” 하는 질문에 ‘예스’ 라고 분명히 대답할수 있는 삶을 세워 나가지 못하고 눈에 보이는 작은것에 연연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자신의 중요한 것을 희생하면서 공조를 이루거나 평화를 만들어 나가는 일에 있어서 남의일은 쉬워 보이나 각자 개인 자신이나 각 나라의 이익문제에서는 대단히 힘든 일이 아닐 수 없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그러나 땅의 경계를 조금 넓히고, 권한을 조금 더 가지고, 혹 예루살렘 관광객의 수입으로 인한 경제적인 문제에 대한 양보할수 없는 문제를 붙들고 있는 동안(물론 그것보다 더 크고 의미있는 문제들은 많겠지만--) 겪어야 할 끊임없이 닥아올 많은 피해들을 계산해 본다면 눈에 보이는 중요하다고 여긴 것을 땅에 내려 놓을 수 있다면 다시 붙잡을수 있는 것이 없지는 않다는 생각이다. 이스라엘은 과거 구약의 역사속에 가졌던 것의 선민의식에서 과거를 회상하고 만 살아가는 것이아니라 한쪽 팔을 잃어 버리고서라도 진정한 실체가 무엇인지를 알고 생명과 더 큰 평화와 현재와 미래를 “하나님의 사랑받는 이스라엘”로 살아가기를 결단 한다면 어쩌면 더 큰 이익을 얻는 결과 가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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