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ursday, June 16, 2016

(5) 둔스 스코투스 Duns Scotus, 1266-1308
둔스 스코투스는 짧은 삶을 사는 동안 케임브리지와 옥스퍼드 파리 대학교헤서 가르쳤으며 명제 주해서를 세권 펴냈다. 그는
첫째 아리스토 텔레스가 세운 인식론의 옹호자였다. 히포의 아우구스티누스로 거슬러 올라가는 이 이론에서는 하나님이 인간의 지성에 빛을 비추어 주심으로써 인식이 발생한다고 보았다.
둘째 신적의지가 신적 지성에 우선하는 것으로 보았다. 토마스 아퀴나스는 신적지성의 우위성을 주장한 반면 스코투스는 신적의지가 앞선다는 가정을 기초로 삼아 신학을 연구하는 새로운 길을 열었다.
셋째 예수의 어머니 마리의의 무흠수태 교리를 강력하게 옹호했다. 아퀴나스는 아리아가 인간에게 공통된 죄의 조건을 지녔다고 가르쳤다. 마리아는 그리스도를 제외한 다른 모든 사람과 마찬가지로 죄로 더렵혀 졌다는 것인데 스코투스는 그리스도가 완전한 구속 사역을 통해 마리아를 원죄에 오염되지 않게 하였다고 주장했다. (??-정길생각은 안 그런데..)

Thursday, May 12, 2016

신학이란 무엇인가? -알리스터 맥그래스-
중세와 르네상스 /신학자들
(4) 토마스 아퀴나스 약 1225-1274
토마스 아퀴나스는 이탈리아의 로카세카 (Roccaseca)성에서 아퀴노 랜덜프 백작의 막내아들로 태어났다. 그의 부모와 형들은 그가 베네딕트 수도회에 들어가 높은 직책에 속하는 몬테카시노 대수도원장이 되는 것이었다. 그러나 아퀴나스는 가족의 뜻에 완강히 반대 하면서 자신의 길로 가서 중세 가장 중요한 종교사상가 중 한사람이 된다.
아퀴나스는 파리에서 학업을 시작했으며 1248년에 퀼른으로 떠났다가 1252년에 신학을 공부하기 위해 파리로 돌아왔다. 4년후에 그는 대학교에서 신학을 가르칠 자격을 획득 하였고 이스람인과 유대인들 사이에서 일하는 선교사들을 위해 기독교 신앙을 옹호하는 주요한 논증들을 제시 하였다.
<나폴리 대학교에서 토마스 아퀴나스는 당시의 7개의 필수 학문인 문법, 논리학, 수사학, 대수학, 기하학, 음악, 천문학을 배운 것으로 알려져 있다. 위키백과 참고>
아퀴나스는 1266년 가장 유명한 저작 <<신학대전 Summa Theologiae >> 를 썼다. 그 내용인 즉 그리스도의 신성 등 핵심적인 교리 문제들을 분석했고 신앙에서의 이성이 맡는 역할등 기독교 신학을 핵심 요소들을 깊이 연구 하였다. 이 저술의 1부는 창조주 하나님, 2부는 인간의 하나님께로 회복됨, 3부는 그리스도의 위격과 사역이 인간의 구원을 이루는 방식을 다룬다.
그는 과로에 의한 일종의 좌절감으로 더 이상을 글을 쓰지 않겠다고 선언한후 127437일에 세상을 떠났다.
그가 남긴 신학의 중요한 공헌 가운데 다음 것들이 있다.
-다섯가지 길-신 존재를 증명하는 다섯가지 방법-신학이란 무엇인가 435
-유비의 원리-이것은 피조물을 통해 하나님을 인식하는데 신학적인 기초를 제공한다. - 위의 책 452-457
-신앙과 이성의 관계-위의책 337-339

추가로 토마스 아퀴나스의 신 존재 증명 다섯가지를 소개한다.-참고/위키백
토마스 아퀴나스는 그의 주저 신학대전(Summa Theologiae) 1부 2문 3항에서 다섯 가지 신존재증명(quinquae viae : 직역-다섯 가지 길)을 제시하였다. 다음은 신학대전에 등장한 그의 증명들을 요약한 것이다.
  1. 운동을 통한 증명 (via ex motu).
    • 모든 사물은 운동한다.
    • 운동하는 사물(res in motu)은 운동하도록 만드는 자(movens)에 의해서 운동한다.
    • 운동하도록 만드는 자의 무한퇴행(regressio ad infinitum)은 불가능하다.
    • 따라서, 모든 운동이 시작되는, 즉 다른 어떤 것에 의해서도 움직여지지 않으면서(a nullo movetur) 다른 모든 것을 운동하도록 만드는 제일의 원동자 즉 운동을 하도록 만드는 첫 번째 것(primum movens)이 존재한다.
    • 이 존재를 이라 부른다.
  2. 능동 원인을 통한 증명 (via ex causa efficientis).
    • 모든 존재하는 것에는 원인이 있다.
    • 모든 것은 그것과 구분되는 다른 어떤 것에 의하여 생겨난다.
    • 원인의 무한퇴행은 있을 수 없다.
    • 따라서, 모든 것을 있도록 한 제일의 혹은 첫 번째 능동 원인이 존재하지 않을 수 없다.
    • 이 제일의 능동 원인을 이라 부른다.
  3. 우연적인 것과 필연적인 것을 통한 증명 (via ex possibilii et necessario).
    • 세상에는 존재할 수도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는 사물들이 있다. 이런 것을 우연적인 존재(esse possibilis)라고 한다.
    • 그런데 만약 세상의 모든 사물들이 이렇게 존재하지 않을 수 있다면 어느 한 시점에 모든 것이 존재하지 않는 시점이 있었을 것이다.
    • 그러나 무에서 무언가가 생성될 수는 없기 때문에 모든 세상의 사물이 우연적일 수는 없으며 이런 우연적 사물들의 근원이 되는 필연적인 것이 반드시 존재해야 한다.
    • 그런데 필연적인 것은 다른 것에 의해, 즉 다른 것에게 필연성의 원인을 둠으로써 필연적이거나 그렇지 않을 것이다.
    • 그런데 필연성의 원인을 소급해가는 과정은 무한퇴행이 불가능하다.
    • 따라서 다른 모든 존재하는 것에 필연성의 원인을 두지 않으면서도 존재하는 필연적인 하나의 존재가 있을 수밖에 없다.
    • 이러한 존재를 이라고 한다.
  4. 사물들이 드러내는 완전함의 등급에 의한 증명 (via ex gradu rei).
    • 우주에는 다양한 등급의 완전함(perfectio)이 존재한다.
    • 완전함의 등급은 어떤 가장 완전한 것과의 가까움과 멂에 따라 다양한 양상으로 드러난다.
    • 이 다양한 양상과 등급으로 드러나는 다른 모든 완전함의 기준이 되는 가장 완전한 존재로서 완전함의 정점을 이라 부른다.
  5. 목적론적 증명 혹은 사물의 지배를 통한 증명 (via ex fine sive ex gubernatione rerum).
    • 세상의 모든 사물들은 어떤 목적에 따라(혹은 목적을 향해) 활동한다.
    • 이것은 세상의 모든 사물들이 거의 항상 그것에게 최상의 결과를 가져오는 방식으로 활동하는 것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 그런데 목적에 따라(혹은 목적을 향해) 활동하는 것은 지적인 능력을 부여받음으로써 자신의 목적을 인식하고 그 목적에 따라 활동하거나, 이런 지적인 능력을 부여받지 못한 경우 지적인 능력을 가진 것이 그들에게 각각 목적을 정해주고 그에 따라 활동하도록 질서를 갖게 됨으로써 목적에 따라(혹은 목적을 향해) 활동하게 된다. .
    • 그러므로 모든 사물들을 목적에 따라(혹은 목적을 향해) 활동할 수 있도록 그들에게 지적인 능력을 부여하거나 혹은 목적을 정해주고 이들을 이끎으로써 목적에 부합하는 질서를 통해 활동하도록 만드는 어떤 지적인 존재(aliquid intelligens)가 존재해야 한다.
    • 이 존재를 이라 부른다

Friday, May 6, 2016

"신학이란 무엇인가?"
                                               -알리스터 맥그래스- 요약 

중세와 르네상스 시대 -약 700년-1500년-



4. 주요 신학자들

(3) 켄터베리의 안셀무스 약 1033-1109
안셀무스는 이탈리아 북부에서 태어났고 당시 학문의 중심지인 프랑스로 이사 하였다. 그는 논리학과 문법학을 통달하고 노르망디의 베크 수도원에서 교사로 명성을 얻었다. 그는 하나님의 존재증명과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에 대한 합리적이 해석가이다. 그의 책 <<프로슬로기온 Proslogion>> 1079년에 나왔는데 지고의 선이신 하나님의 존재 와 속성을 믿게 해주는 논쟁을 제시하고자 씨름한다. ‘존재론적인 논증이라고 불리우기도하는 이 책은 하나님의 존재를 그 보다 더 큰 것을 생각할 수 없다는 것을 주장한다. 이 책은 스콜라주의 신학의 진면목을 선구적으로 보여준다.
노르만족의 영국침략 1066 이 있은 후 1093년에 안셀무스는 캔터베리 대주교로 초빙되었으며 영국교회에 대한 노르만 세력의 영향력을 더욱 확고히 다지게 되었다.
안셀무스는 그의 저작 가운데 가장 중요한 <<왜 하나님은 인간이 되셨는가? Cur Deus Homo>>를 썼다. 이 책에서 그는 하나님이 인간이 될 수밖에 없는 필연적인 이유를 합리적으로 증명하고 하나님의 아들이 인간의 몸을 입고 순종한 결과로 인간이 누리게 된 은혜에 대해 분석했다. 이 논증은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의의미 그리고 그것이 인간에게 지니는 중요성을 분석하는 이론인 속죄론이 논의 되는 곳에서는 어디서나 근본적으로 중요하게 다루어 진다.

이 책은 스콜라주의의 전형적인 특성들을 가장 잘 보여준다
. 이성에의 호소, 논증의 논

리적 전개, 개념들의 함의(含意-속으로 어떤 의미를 담고 있음)에 대한 집요한 탐구 그

리고 기독교 신앙은 원래 합리적이며 또한 합리적인 것으로 입증 될 수 있다는 기본 신

념 등이 그것이다.

Saturday, April 30, 2016

"신학이란 무엇인가?" -알리스터 맥그래스- 요약 

중세와 르네상스 시대 -약 700년-1500년-


4. 주요 신학자들

(2) 신 신학자 시메온
Simeon the New Theologian Symeon 949-1022
그는 949년 소아시아 파플라고니아의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났다. 11살이 되자 더 나은 교육을 받기위해 대도시인 콘스탄티노플로 옮겨갔다. 그의 부모는 아들이 정치 쪽으로 일하기를 바랐으나 그의 20세때 그는 영적인 체험을 하고 하나님과의 직접적인 만남의 중요성을 확신하게 되었다.
27세가 되어 그는 스투디오스 수도원으로 들어가 ‘경건한 시메온’의 영적 가르침을 받게 되고 스승에 대한 존경의 표시로 자기이름인 그레고리우스를 시메온으로 바꾸었다. 그는 콘스탄티노플에 있는 성 마마스 수도원으로 들어갔으며 거기서 사제로 안수받고 마지막에는 수도원장이 되었다. 그는 수도원의 기도와 명상 생활을 갱신해 나갔으며 관상 기도와 명상의 힘을 강조 하면서 다수의 영적 서적을 집필 하였다. 그는 특히 성육신의 교리를 강조하고 신화(神化) deification 로서의 구속을 역설 하였다.


Monday, April 18, 2016

                     "신학이란 무엇인가?"  -알리스터 맥그래스-  요약 
                         중세와 르네상스 시대 -약 700년-1500년-  

4. 주요 신학자들(p95)
(1) 다마스쿠스의 요하네스 Johannes of Damascus 676-749
이 시리아 신학자는 동방교회의 가장 영향력 있는 사상가 중 한 사람이었으며 대체로 마지막 그리스 교부로 여겨진다. 그의 당시에는 이슬람이 북 아프리카의 많은 지역과 지중해 동부 지역을 휩쓸고 있었고 시리아는 확고하게 이슬람의 통치를 받고 있었다.
그는 아버지의 뒤를 이어 칼리프(정통 칼리프 시대 632-661 마호멧이 죽은 뒤 이슬람의 후계자이다) 를 섬기는 최고 재무 책임자가 되었다. 그러나 726년에서 730년 사이의 어느날 그는 칼리프의 궁정에서 맡았던 직책을 포기하고 예루살렘 동남쪽에 있는 성 사바스 수도원으로 들어갔다. 요하네스가 이슬람 궁정에서 누린 지위 때문에 비잔티움 있던 많은 적대자들은 그를 맞서 이렇다 할 조치를 취하지 못했다.
그는 성상을 파괴하려는 사람들을 반대했고 성상 사용에 대한 옹호로 성육신 교리를 사용했다. 하나님은 자신을 드러내 보이기를 좋아 하시고 자신의 신적 진리를 제시하기 위해서 물질적 형태들이 사용할수 있다고 주장 하였다.
요하네스의 대표적인 저술은 <<지식의 원천>> <<존재론>> <<정통신앙에 대한 세밀한 분석>> 등이 있는데 라틴어권과 헬라어 권 기독교인들이 모두 이책을 높이 평가 했으며 1150년에는 피사의 부르군디우스가 라틴어로 번역 하였다. 이책을 페트루스 롬바르두스의 <<네권의 명제집>>과 토마스 아퀴나스의 <<신학대전>>에도 인용되었다.




Saturday, April 16, 2016

(8) 히포의 아우구스티누스(Augustinus, Aurelius 354.11,13-430.8.28)

. 그의 생애
아루렐리우스 아우구스티누스는 기독교 교회의 오랜 역사를 통틀어 가장 위대하고 강력한 영향을 끼친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고대 그리스의 교부, 은총박사, 히포의 주교라는 명칭을 가지고 있다.
그는 북 아프리카의 타가스테에서 출생했다. 부친 파트리키우스는 이교도로서 로마제국의 관리로 있었다. 그러나 모친 모니카는 그리스도인이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칼타고 대학에 유학하여 수사학을 배웠으나 방탕한 기질로 인하여 16-19세 까지 무질서 하고도 방종한 생활을 보냈다. 19세때 어머니의 동의 없이 미천한 여자와 동거생활을 하여 아들 하나를 낳았다. 그러나 왠지 육체적인 욕망과 이상의 틈바구니에서 고민 하였다. 그러던 중 새로운 계기가 찾아왔다. 373년에 그는 키케로가 쓴 <<Hortensius>>를 읽는 중 철학문제에 흥미를 갖게 된다. 그 후 곧 그는 마니교도가 되어 철저한 선악 이원론에 매력을 느끼고 악의 문제에 관한 자신의 번민을 해결하려고 했으며 아울러 그의 조직적인 우주론으로써 자기의 욕망을 채우려고 생각했다.
20세에 칼타고에서 돌아와 타가스테에서 그리고 다시 칼타고에서 수사학을 가르치다가 383년에 그는 처자를 데리고 친구와 함께 로마로 갔다. 여기서 마니교도인 친지를 만나 밀라노 대학에서 교수직을 얻었다. 그러나 어쩐지 마니교의 우주론에 의혹을 품기에 이르렀고 또한 영적 실재에 대한 철학적 인식을 소유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리스도의 신관을 파악하지 못한채 신 아카데미파에 머물러 있었다. 그런데 아우구스티누스의 회심에 꾸준한 노력과 결의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것을 어머니 모니카였다. 그는 어느날 밀라노 정원에서 거닐다가 “ tolle Lege" "집어들고 읽어라" 라는 어린아이의 음성을 들었다. 그는 그 길로 즉시 성서를 손에잡고 읽은 것이 롬13:13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방탕하거나 술 취하지 말며 음란하거나 호색하지 말며 다투거나 시기하지 말고이었다. 이때가 386년이었다. 이에 뜨거운 느낌을 갖고 드디어 밀라노 대학의 교수직을 박차 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모친과 친구와 더불어 카시키아쿰에 도착, 여기서 한가하게 지내면서 반성과 토의와 나아갈 길을 모색하게 되었다. 드디어 387년 부활절에 아우구스티누스는 다시 밀라노에 가서 암브로시우스로부터 세례를 받았다. 그후 모친의 별세로 마음의 허전함을 느낀채 고향인 타가스테로 돌아왔다.(388) 그리고 여기서 기도와 명상과 연구에 몰두했다. 그러다가 391년에 히포의 신부로 임명 받았 394년에는 보좌 신부로 396년에는 단독으로 동교구를 지도하는 주교가 되어 34년간 별세 할때까지 봉직 하였다.

. 그의 공적
하르낙은 바울과 루터 사이에 교회는 아우구스티누스에 맞설만한 인물을 갖고 있지 않다고 말한바 있다.
(이것은 그 사람의 공적이나 인기 문제가 아니고 그의 신학에 대한 영향력 결코 낡아지지 않는 중심신학의 힘이다.-정길생각-)
그는 비단 중세기에서만 아니라 오늘날에서도 서구의 정신과 동구의 정신을 망라하여 정신계에 생명과 발랄한 호흡을 불어넣은 것은 아우구스티누스의 힘이라고 볼수 있다.
그의 정신은 신학자 토마스 아퀴나스와 토마스 아 킴퍼스 에서도 살아 움직였다. 또한 카롤링 왕조시대의 개혁자와 위클리프, 후스 베셀에 이르기까지 개혁 정신을 불어넣은 사람이다. 르네상스와 루터에 이르기까지 아우구스티누스의 영향을 받지 않은자가 없었다. 로마교회의 아버지였지만 인문주의 자도 영웅처럼 존경한 교부였다는데 아무런 이의가 있을수 없다.
그의 사상은 대체로 교회의 신앙에다 철학적인 진리 내용을 첨가하여 더 풍성하게 하였고 사도시대 이후의 종교적인 여러 가지 개념을 하나의 신 개념하에서 통합 시키는 데 있었다. 우선 그는 마니교의 이원론적 세계관과 자유의지의 교훈을 통렬히 비판하고 치열한 논쟁을 벌였다.(404년까지) 그리고 칼타고의 도나투스파와의 논쟁을 통하여 성례전의 객관적인 역사는 이를 시행하는 자의 신앙과 도덕과는 무관계 하다는 점을 주장 백년간에 걸쳐 내려온 논쟁을 칼타고 종교회의에서 종결 시켰다. (411)
하르낙은 아우구스티누스의 <<고백록>>은 마치 괴테의 <<파우스트>>에 비교할수 있다. 즉 살아있는 파우스트가 그려져 있다고 하였다. 그는 <<고백>>에서 "암브로시우스는 나에게 구약성서의 장애물을 제거해 주었다."고 하였다. 암브로 시우스의 성서석의의 희랍적인 방법은 그에게 큰 매력을 던져 주었다. 그러나 실은 그에게 있어서 석의 방법 보다는 그의 인격이 보다 더 큰 위력을 가지고 있다. 그는 <<고백>>을 통해서 하나님에 대한 고백 형식으로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을 그 동기와 목적으로 썼다.
. 그의 신학
<1>구원론
타락된 인간의 회복은 오직 은총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저 유명한 펠라기우스와의 논쟁이 바로 자연과 은총’ ‘자유와 은총의 문제였다.
펠라기우스는 선과악을 선택할 수 있는 타고난 능력으로 인간은 하나님과의 조화된 상태에 이를수 있다고 하였다. 이른바 형식적 자유를 강조하였다. 그러나 아우구스티누스는 하나님의 은총에 의해서만 가능하고 의지의 변화도 은총의 선물로 주어진다고 보았다. 그리고 인간회복도 은총에 의존 한다고 보았다. 결국 칼타고 회의에서 펠라기우스는 배척되고 아우구스티누스가 승리를 거두었다.(412) 또한 아우구스티누스는 은총을 불가항력적인 동시에 예정된 것이라고 보았다. 특히 아우구스티누스의 신 개념에 나타난 신 플라톤주의적 색채, 개인적인 종교적 체험, 은총의 독점적인 작용에 대한 인식 등은 모두 예정이라는 개념과 연관성을 가지고 있다. 은총은 인간을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의지이다. 만일 은총이 인간에게 임하면 인간은 그것을 거역할 수 없다. 그러나 하나님은 인간의 의지를 무시하고 행하시는 것은 아니다. (인간이 받아 들일수 있는 적절한 타임에 나타나신다?-정길생각-)
아우구스티누스도 인간의 의지를 부정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의지는 회복된 자유를 가지고 선택을 행한다. 그런데 문제는 예정론이다. 예정되지 못한 자들은 세례를 받고 새로워 졌다 할지라도 구원을 받지 못한다는 것. 이 예정 교리로 인하여 애굽의 수도사들간에는 적지않은 혼란이 야기 되었던 일도 있었다. 그러나 이 예정교리는 구원의 확증을 위한 내적 필요성에서 비롯된 것임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요리 하려고 칼을 들었는데 칼은 위험하다고 하며 무서워 한다. 그 칼을 사용할 목적을 알지 않은채... 예정의 교리는 하나님 편에서 예정이지 사람 편에서가 아니다. 하나님의 목적에 의한 예정이다.-정길생각-)
<2>교회론
아우구스티누스의 교회관은 몇가지 특징을 지니고 있다.
첫째로 카톨릭 교회의 절대성을 주장하는 것이다. 사도들의 신앙과 성례와 성직을 소유하고 있는 이 교회만이 신도를 구성하고 정화 시킬수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외형적인 카톨릭의 절대성이 아니라 실제 내용면에서 사도들의 신앙, 성례, 그리고 성직이 필요하다. -정길생각-)
둘째로 외적인 조직으로서의 성도들의 사귐이다. 이것을 진정한 교회에 속해 있는자로 본다. (사귐이 없으면 교인이 아닌가?-정길생각-)
세 번째로 구원받도록 예정된 자만이 참된 교회 일원으로 남는다. 이것은 그의 저서 <<신국론>>에서 나타난다.
이 세가지는 이세상의 어떤 현상이나 상태에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과 세상의 백성이라는 개념을 기초로 하므로 하나님이 계수하시는 것이다.

(신학이란 무엇인가?-알리스터 맥그래스- 그리스도교 대사전 p660 참조, -기독교서회- 조선출 1972)